고돌국 왕자 휘의 강렬한 강호 출사표와 절세의 비기 '고도리' 다룬 지난 4화에 이어, 5화에서는 두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고 판 전체를 어지럽히는 어둠의 세력이 등장하며 마침내 핏빛 혈투의 조짐이 피어오릅니다.
제5화: 혈투의 조짐, 판을 어지럽히는 흑운(黑雲)
안개 속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향기
백두산 산맥의 능선을 따라 짙게 깔린 안개는 단순히 안개 그 자체가 아니었다.
고돌국의 어린 왕자 휘가 천령산맥의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수록, 코끝을 찌르는 것은 산들바람의 상쾌함이 아닌 서늘하고 퀴퀴한 핏빛 향기였다.
"이것은... 피 비린내가 아니라 패에 스며든 흑살기(黑殺氣)"
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으며 살기가 어렸다.
옛이야기에서 들었던, 정당한 승부보다 야비한 속임수와 살인으로 판을 어지럽히는 음지의 무리. 이른바 '흑운교(黑雲敎)'의 기운을 느꼈다.
흑운교는 고돌국과 초단국이 오래전부터 지켜온 신성한 규칙, 즉, 패로 겨루어 승패를 가르고 패자는 승자에게 승복한다는 강호의 오랜 이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비열한 살수집단이었다. 그들은 상대의 패를 빼앗고 진기를 파괴하며, 승부에서 패배한 자의 목숨까지 거두어가는 잔혹한 자들이었다.
판을 더럽히는 자들의 등장
산길 모퉁이를 돌아서자, 커다란 바위터 위에서 서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흐흐흐, 초단국의 비단 띠를 차고 있으면 무엇 하나? 한 번 떨어진 패는 다시 붙일 수 없는 법!"
검은 도포를 두르고 얼굴에 흉측한 문신을 새긴 사내 셋이 한 상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상인은 초단국과 물자를 거래하는 정당한 화객(貨客)이었으나, 그들의 덫에 걸린 탓에 이미 오른팔의 기혈이 막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상인의 발밑에는 붉은 홍단 패들이 조각조각 찢긴 채 피에 젖어 깔려 있었다.
"정당하게 패를 내고 맞추는 것이 강호의 도리이건만... 감히 속임수로 판을 어지럽히고 사람의 목숨까지 탐하다니!"
상인이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으나, 흑운교의 사내는 비웃으며 손가락 사이에서 검은 광택이 도는 패를 꺼냈다.
그 패에는 본래 있어야 할 화려한 그림 대신, 기괴한 해골 모양이 검게 새겨져 있었다.
"도리? 룰? 그딴 건 승리한 자가 만드는 것이다. 바닥에 깔린 피를 모두 우리가 쓸어 담으면, 이 강호의 법도 우리가 새로 쓰는 법!"
사내가 검은 패를 상인의 정수리를 향해 튕겨 내려고 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람을 찢는 사쿠라의 섬광
"슈-!"
공기를 찢는 파열음, 서늘한 소리와 함께, 붉은빛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랐다.
"콰앙-!"
검은 해골 패가 상인의 머리에 닿기 직전, 어디선가 날아온 삼의 사쿠라 패가 해골 패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관통했다.
굉음과 함께 검은 패는 허공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흑운교 사내의 손끝에서는 거센 충격으로 인해 핏방울이 터져 나왔다.
"감히 누구냐!"
흑운교 사내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안개 속에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소년.
그의 오른손에는 붉은 달과 사쿠라가 그려진 삼월 광(光)패가, 왼손에는 날아오르는 기러기가 그려진 팔월 패가 쥐어져 있었다.
바로 고돌국의 왕자, 휘였다.
"남의 판에 함부로 침을 뱉고, 패를 더럽히는 무식한 무리들이 있구나."
휘의 목소리는 옥구슬이 굴러가듯 정갈했으나, 그 안에 담긴 내공은 바위를 가를 듯 무거웠다.
싹쓸이의 전조, 거친 폭풍이 몰아치다
"애송이가 제 발로 죽음을 찾아왔구나! 저놈을 잡아 흑운교의 제물로 삼아라!"
흑운교 무사 셋이 동시에 휘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들의 손에서 쏟아지는 수십 장의 검은 패들은 허공에서 그물망처럼 얽히며 휘의 모든 퇴로를 차단했다.
판 전체를 거대한 어둠으로 덮어버리는 흑운교의 필살기, '흑운덮개(黑雲包圍)'였다.
바닥에 깔린 바람마저 얼어붙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휘는 눈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판이 어둡고 더러워졌다면, 싹 쓸어버려 정화하는 것이 답이다."
휘 휘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긴 순간, 신형이 허공을 가르며 세 갈래로 흩어졌다.
남은 것은 실체를 분간할 수 없는 세 줄기의 잔영뿐이었다.
휘의 비기이자 절세 무공인 '고도리(五鳥) 신법'이었다.
2월의 꾀꼬리처럼 빠르고, 4월의 두루미처럼 고고하며, 8월의 기러기처럼 매서운 세 마리 새의 환영이 허공을 수놓았다.
휘의 신법이 흩뿌려질 때마다, 흑운교 무사들이 쳐놓은 검은 패의 그물망은 맥없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우리의 검은 기운을 단숨에 뚫어내는 것이냐!"
"너희가 아는 화투는 그저 사람을 해치는 살수이지만, 내가 쥐고 있는 패는 하늘의 이치다."
휘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삼월 광패의 붉은 기운이 거대한 태양처럼 폭발하며 흑운교 무사들의 가슴을 때렸다.
"크아아악!"
단 한 번의 수싸움,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흑운교 무사 셋은 비명을 지르며 바위에 부딪혀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더러운 검은 패들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갔다.
피할 수 없는 결전의 운명
휘는 피를 토하며 넘어진 흑운교 무사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돌아가서 너희의 수장에게 전하라. 판을 더럽히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잃고 피 껍데기 한 장조차 건지지 못할 것이다."
살아남은 무사들이 헐떡이며 안개 속으로 도망쳤다.
휘는 부상을 입은 상인을 일으켜 세워 치료해 준 뒤, 다시 백두산 너머 초단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방금 상대한 자들은 그저 흑운교의 거대한 잔재에 불과했다.
산맥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어둠의 깊이로 보아, 이미 초단국과 고돌국의 경계에는 거대한 음모가 싹트고 있음이 분명했다.
핏빛으로 물드는 저녁노을 아래, 휘의 손 끝에서 붉은 사쿠라 패가 서늘하게 반짝였다.
강호를 뒤흔들 혈투의 조짐. 이제 그 잔혹하고도 신성한 판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제6화 - 소년 왕자의 입산, 절세고수에게 가르침을 청하다. 강력한 어둠에 맞서기 위해 은둔한 화투의 전설을 찾아 나서는 휘 왕자! 과연 그는 절세 고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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