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화투강호 외전

제1화: 천명(天命)의 신아(神兒), 양 손에 빛을 품다

건강이 최고!!! 2026. 8. 5. 23:48

천명(天命)의 신아(神兒), 양 손에 빛을 품다

이 글은 망둥어가 뭍에 올라 호랭이와 맞담배질하던 시대, 호랑이가 개를 타고 수레를 팔던 시대의 이야기이며, 애절하며도 슬픈 고스톱에 얽힌 이야기임을 먼저 밝힌다. 

 

태초의 백두산 깊은 골짜기,

인적조차 닿지 않는 영산(靈山)의 품속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두 나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고돌국(鳥月國)과 초단국(草短國).

 

이 두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화투는 단순한 유희나 도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공이자 학문이었고, 하늘의 뜻을 읽는 신성한 도법(道法)이었다.

 

저잣거리의 철부지 아이들은 천자문 서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른 손가락으로 붉고 화려한 화투짝을 거머쥐었으며, 매년 조정에서 열리는 과거 시험은 붓 대신 패를 잡고 천하의 섭리를 다투는 엄숙한 장(場)이었다.

 

패 하나를 내던지는 손끝의 궤적에 내공이 실렸고, 바닥에 깔린 패를 읽는 안광에는 고수의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어느 날, 백두산을 병풍처럼 두른 두 나라의 하늘에 기이한 징조가 나타났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천지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검붉은 먹구름이 장엄하게 몰려들어 해를 가렸고, 백두산의 온갖 영물들이 나직하게 울부짖었다.

 

만주 벌판에서 호랑이가 개를 타고 달리고 망둥어가 뭍으로 올라와 호랑이와 담배를 나누어 피운다는 기이한 옛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일시적으로 거꾸로 흐르는 천지개벽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짙은 어둠 속에서도 오직 두 곳, 고돌국의 왕궁과 초단국의 왕궁 위로만은 하늘에서 뚫고 내려온 영롱한 붉은 빛이 단단한 기둥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응아-! 응아-!"

 

고돌국 왕궁의 옥좌 뒤편, 정적을 깨뜨리는 갓난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드높은지 왕궁의 기와가 진동하고 뜰 앞에 서 있던 수령 백 년의 소나무들이 들썩일 정도였다.

 

"왕자님이시다! 왕자님이 태어나셨다!"

 

산실을 지키던 국의(國醫)와 궁녀들이 감격에 겨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아이를 받아 든 대의(大醫)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모습이 이상했다.

주먹을 꽉 쥔 채 태어난 아이의 양손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한 기운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전하! 이, 이것을 보옵소서!"

 

대의가 떨리는 음성으로 고돌국의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황급히 걸음을 옮겨 갓 태어난 왕자의 손을 살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꽉 쥐고 있던 양손을 천천히 펼쳐 보였다.

 

순간, 산실 안을 채우고 있던 등불이 일제히 일렁이며 아이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의 오른손에는 붉은 바탕에 고고하게 스며든 붉은 달과 벚꽃이 그려진 패, 즉 3월의 ‘광(光)’ 패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왼손에는 화려한 단풍나무 아래에 우뚝 선 삼목과 붉은 해가 새겨진 패, 바로 8월의 ‘광(光)’ 패가 들어앉아 있었다.

 

"삼과 팔……! 삼팔광을 양손에 쥐고 태어나다니!"

 

고돌국의 왕은 기쁨과 경악이 섞인 탄성을 질렀다.

 

전설 속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삼팔광’의 운명을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태어난 아이. 그것은 훗날 이 강호의 모든 패를 지배하고, 바닥에 깔린 판의 흐름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싹 쓸어버릴 절대고수의 탄생을 의미했다.

 

같은 시각, 산맥 넘어 초단국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신아가 태어나고 있었다.

 

절세의 영기를 품은 공주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초단국의 궁궐 뜰에 깔린 화초들이 마치 무릎을 꿇듯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백두산 깊은 산골, 천기(天機)를 품고 태어난 고돌국의 왕자와 초단국의 공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두 절대운명의 탄생과 함께, 훗날 강호를 뒤흔들고 패배한 자가 승자에게 마땅히 '피 한 장'을 바쳐야만 하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싹쓸이와 판쓸이의 전설이 비로소 그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강호의 판 위에 선 자, 그 누구도 이 운명의 굴레를 피할 수는 없으리라.

 

by JKim